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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역력을 올린다는 말,
무슨 뜻일까요

내과 전문의 유동훈 · 면역 / 건강관리

세 줄 요약
면역은 하나의 수치가 아니라 성격이 전혀 다른 여러 단계가 겹쳐진 체계입니다.
1차는 물리적 장벽, 2차는 즉시 출동하는 선천면역, 3차는 기억하고 학습하는 적응면역입니다.
면역력을 올린다는 광고 중 실제로 이 체계를 강화한다는 근거가 확실한 것은 많지 않습니다.

면역력은 측정할 수 있는 수치인가요

진료실에서 제 면역력 수치 좀 봐 달라는 요청을 종종 받습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면역력이라는 단일 수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혈액검사에서 백혈구 수, 림프구 비율, 면역글로불린 수치 등을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면역 체계의 일부 지표일 뿐, 이를 합쳐 "당신의 면역력은 78점"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면역은 점수가 아니라 여러 겹의 방어선이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입니다.

1차 방어선 · 물리적 장벽

가장 먼저이자 가장 과소평가되는 방어선입니다.

피부
통째로 하나의 방벽입니다. 찢어지지 않는 한 대부분의 병원체는 들어오지 못합니다.
점막
호흡기·소화기·비뇨생식기의 젖은 표면입니다. 점액이 병원체를 붙잡습니다.
섬모
기도 표면의 미세한 털이 점액을 밖으로 밀어냅니다. 흡연은 이 섬모를 망가뜨립니다.
위산
음식과 함께 들어온 세균 상당수를 여기서 처리합니다.
정상 세균총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나쁜 균이 들어설 틈을 주지 않습니다.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뒤의 단계가 아무리 튼튼해도 부담이 커집니다. 상처를 잘 소독하고, 금연하고, 손을 씻는 기본적인 일들이 사실 면역의 첫 단추입니다.

2차 방어선 · 선천면역

장벽을 뚫고 들어온 침입자에게 즉시 출동하는 부대입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따지지 않고 일단 공격합니다. 대식세포와 호중구가 주력이며 침입자를 통째로 잡아먹습니다. 상처가 곪는 것은 이 세포들이 싸운 흔적입니다.

염증 반응도 여기 속합니다. 붓고, 붉어지고, 열이 나고, 아픈 것. 불쾌하지만 이는 병이 아니라 방어 작전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입니다. 혈관을 넓혀 더 많은 면역세포를 현장에 보내는 과정입니다.

발열도 같은 맥락입니다. 체온을 올리면 많은 병원체의 증식이 억제되고 면역세포는 더 활발해집니다. 그래서 미열이라고 해서 반드시 즉시 떨어뜨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는 건강한 성인 기준의 이야기입니다. 소아, 고령자, 기저질환이 있는 분, 그리고 고열이 지속되는 경우는 다릅니다. 열 자체가 몸을 지치게 하고 탈수를 부르며, 열의 원인이 치료가 필요한 감염일 수 있습니다. 판단이 서지 않으면 진료를 받으시는 편이 안전합니다.

선천면역은 빠르지만 정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억하지 못합니다. 같은 균이 백 번 들어와도 매번 처음처럼 대응합니다.

3차 방어선 · 적응면역

여기서부터 정밀해집니다. 그리고 기억합니다.

B세포는 침입자에 딱 맞는 항체를 만듭니다. 특정 병원체만 표적으로 삼는 유도무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T세포는 감염된 세포를 직접 찾아내 제거하고 다른 면역세포에게 지시를 내립니다.

적응면역의 결정적 특징은 기억세포입니다. 한 번 싸운 상대의 정보를 남겨두었다가, 다음에 같은 상대가 들어오면 훨씬 빠르고 강하게 대응합니다. 홍역을 한 번 앓으면 다시 걸리지 않는 이유이고, 예방접종이 작동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백신은 병을 앓지 않고도 이 기억을 만들어 주는 방법입니다. 실전 없이 훈련만으로 대응 매뉴얼을 확보하는 셈입니다.

다만 적응면역은 느립니다. 처음 만나는 상대에게 제대로 된 항체가 나오기까지 며칠에서 일주일 이상 걸립니다. 그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 앞의 두 방어선입니다.

그래서 면역력을 올리려면 뭘 해야 하나요

이 세 방어선을 보고 나면 무엇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방향이 보입니다.

반대로 면역력 강화를 내세우는 제품은 많지만, 사람에서 감염이나 질병 발생을 실제로 줄인다는 근거까지 확보한 경우는 드뭅니다. 시험관 실험에서 면역세포가 활성화됐다는 것과, 사람이 실제로 덜 아프다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기억하실 것은 하나입니다. 면역은 올리는 것이 아니라, 망가뜨리지 않는 것에 가깝습니다.